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윔블던(테니스 대회) (문단 편집) == 역사 == 윔블던이 열리는 '올 잉글랜드 클럽'의 역사는 1868년에 설립된 사설 테니스&크로켓 클럽인 '''The All England Lawn Tennis and Croquet Club'''에서 시작되었다.[* 이 클럽에서 사용한 최초의 경기장은 윔블던 워플로드(Worple Road)에 위치.] 이후 1870년대 즈음, 월터 클롭턴 윙필드(Walter Clopton Wingfield) 장군에 의해 현대 테니스와 거의 유사한 규칙과 장비 등을 적용하여 테니스 대회를 개최한 것이 지금의 윔블던 대회로 이어지고 있다. 전체 경기장에서 메인 코트는 다른 코트들의 중앙에 위치하게 배치되었는데, 이 때문에 메인 코트에는 ‘센터 코트’(Centre Court)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이후 1922년 경기장이 현재의 처치로드(Church Road)로 옮겨오면서 메인 코트의 위치는 중앙이 아닌 다른 위치로 배치되었지만 기존의 명칭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1980년에 4개의 코트가 경기장 북측에 새로 만들어지면서, 센터 코트의 위치는 다시금 실제로 전체 경기장의 중앙에 위치하게 되었다. [[1877년]] 첫 대회에서는 남자 단식 경기만이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서는 영국 상류층이 다니는 [[퍼블릭 스쿨|명문 사립학교]]인 해로우 스쿨 출신의 스펜서 고어(Spencer Gore)가 우승했으며, 결승전에서는 약 200명의 유료 관람객들이 경기를 관전했다. [[1882년]]에 이르러서는 클럽의 활동이 거의 론 테니스로 한정되었으며, 이에 따라 클럽 명칭에서 ‘[[크로케]]’가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정서적인 이유에서 이 단어는 1889년 다시 복원되어, 이 때부터 클럽의 명칭은 올 잉글랜드 테니스 앤드 크로케 클럽이 되었다. [[1884년]]에는 대회에 여자 단식과 남자 복식이 추가되었으며, 1913년에는 여자 복식과 혼합 복식이 추가되었다. 1922년 이전까지 대회의 우승자는 자동으로 이듬해 대회 결승에 진출하고 새로운 결승 진출자가 이에 도전하는 방식으로 대회가 진행되었다. 다른 그랜드 슬램 대회들과 마찬가지로, 옛 윔블던에는 톱 랭킹 아마추어 선수들이 대거 참가하였으며, 이는 1968년 오픈 시대가 시작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남자 단식에서는 1936년 프레드 페리 이후, 그리고 여자 단식에서는 1977년 버지니아 웨이드 이후로 오랫동안 영국 출신 우승자가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영국에서 개최하는 세계적 명성의 대회에서 자국 선수가 장기간 우승하지 못하는 것이 마치 금융시장의 과도한 자유개방으로 인하여 자국 금융시장이 외국 자본에 잠식되는 상황과 비슷하여 윔블던 효과라는 경제 용어가 생겼다. 그러다가 36년만인 2013년에 [[앤디 머리]]가 남자 단식 우승을 차지하였고 여자 주니어 단식 에서는 1984년 애너벨 크로프트와 2008년 로라 롭슨이 영국인 출신으로 우승하였다. [[1937년]] 대회 최초로 경기가 TV로 중계되었다. [[1993년]] 윔블던은 가장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최고 권위의 테니스 대회로서의 위상을 21세기에도 이어 나간다는 목표 아래 관람자와 참가선수, 대회진행요원들 및 지역 주민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도록 대회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장기 계획을 발표하였다. * 1단계 계획은 1997년 아오란지 파크(Aorangi Park)에 새로운 1번 코트와 방송 센터, 두 면의 추가 잔디 코트 및 언덕 지역 아래에 처치로드와 서머싯로드(Somerset Road)를 잇는 터널을 완공하면서 완성되었다. * 2단계 계획은 옛 1번 코트 경기장을 철거하여 여기에 선수 및 기자, 진행요원, 회원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갖춘 새로운 밀레니엄 빌딩을 건축하는 것과, 센터 코트의 서쪽 스탠드에 728석의 좌석을 추가 설치하는 것으로 완성되었다. * 3단계 계획은 입구 빌딩과 직원 숙소, 박물관, 은행 그리고 티켓 오피스를 설치하는 것으로 완료되었다. [[2009년]]에는 센터 코트에 개폐식 지붕을 설치하여 우천에 관계없이 지속적인 경기 진행이 가능한 환경을 갖추었다. 올 잉글랜드 클럽은 2009년 5월 17일에 개폐식 지붕 설치를 기념하는 축하행사인 A Centre Court Celebration을 개최하였으며, 이 행사에서는 안드레 애거시+[[슈테피 그라프]] vs 킴 클레이스터르스+팀 헨만의 혼성 복식 초청 경기가 함께 열렸다. [* 애거시+그라프 부부는 말할 필요 없는 테니스 레전드 이고, 킴 클레이스터르스도 그랜드 슬램 대회 4회 우승에 랭킹 1위에 오른 위대한 선수이다. 팀 헨만은 그랜드 슬램 대회 우승은 없지만, 영국인으로써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유명 선수이다.] 정식 대회에서 새로운 지붕을 최초로 사용한 것은 이 해 윔블던 여자 단식 4회전 디나라 사피나와 아멜리 모레스모의 경기 도중에 시작된 비로 인해 지붕을 닫고 경기를 속행한 것이었다. 전체 경기가 지붕을 닫고 진행된 최초의 경기는 2009년 6월 29일 열린 윔블던 남자 단식 [[앤디 머리]]와 [[스탠 바브린카]]의 경기였다. 한편 윔블던에서 하루 중 가장 늦게 종료된 경기는 2010년 대회 남자 단식 1회전 노박 조코비치와 올리비에 로쿠스의 경기로, 이 경기는 오후 10시 58분에 조코비치의 승리로 끝났다. 2009년에는 2번 코트를 위한 4000석의 새로운 좌석이 옛 13번 코트 자리에 설치되었다. 2010년 9월 현재 3번 코트를 위한 2000석의 새로운 좌석의 설치가 옛 2번 코트와 3번 코트 자리에서 진행 중이다. [[2019년]]부터 디사이딩 세트 스코어 12:12이면 타이브레이크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https://www.atptour.com/en/news/wimbledon-introduces-fifth-set-tie-break|#]] 2022년에는 [[https://www.washingtonpost.com/sports/2022/03/16/grand-slams-tennis-tiebreaker/|디사이딩 세트 게임스코어 6:6에서 10점 선취 타이브레이크]]를 적용하는 그랜드슬램 대회 표준 규정에 합의하였다. 130년이 넘는 유구한 개최역사에서 대회가 열리지 못한 경우가 딱 9회 있는데 이 중 8회는 세계대전의 영향 때문. 1915~1918년까지는 [[제1차 세계대전]] 때문에, 1940~1945년까지는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대회 개최가 중단되었다. 또한 2020년 4월 1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2020년 대회가 [[http://www.chicagotribune.com/sports/breaking/ct-coronavirus-wimbledon-canceled-20200401-i5lkt2m27vap3l6wmwhhlhkxn4-story.html|취소]]되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이후 75년만이다. 영국 내 확진자 추세가 매우 심각한데다 잔디 코트 특성상 관리가 매우 힘들고, 여름철이 지나면 경기용으로 쓰는 것이 부적합해 사실상 연기라는 선택지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발한다는 의미로 러시아 및 벨라루스 국적 선수들의 참여를 불허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그러자 [[ATP 투어|ATP]]와 [[WTA 투어|WTA]]는 공정성과 차별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며 윔블던 본선 모든 경기의 결과에 관계없이 랭킹 포인트 미부여 조치를 검토중이라는 폭탄선언을 해버렸다. [[https://sports.news.naver.com/news?oid=056&aid=0011270180|관련기사]] 그리고 [[5월 21일]], 세계 테니스계를 총괄하는 대표적인 단체인 ATP & WTA & ITF(국제테니스협회)에서 공식적으로 금년 윔블던 대회 결과에 대해 랭킹 포인트를 부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https://www.atptour.com/en/news/atp-statement-removal-of-ranking-points-wimbledon-2022|성명문]] [[https://sports.news.naver.com/news?oid=481&aid=0000007139|관련기사]] 2023년에 다시 러시아 및 벨라루스 국적 선수 참가 허용하나, 대회 기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지지 의사 표명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서명해야 하고, 러시아나 벨라루스 정부로부터 대회 출전에 대한 지원을 받아서도 안 된다는 규칙안을 내놓았다.[[https://m.yna.co.kr/view/AKR20230401012400007?section=international/all|#]]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